서지영의 오디오 시

어느 여름날의 소나기

 

가깝게 다가오는 한낮의 뇌우

지겨운 부활절날 긴긴 미사후 해방된듯 하늘문이 열리고 격렬한 사랑이 강림한다.
정원의 작약이 줄기 째 요동치고 붉은 꽃잎들이 땅바닥에 뿌려진다.
먼지 가루가 천지에 피어올라 대지의 향기가 사방에 진동한다.
천지창조의 서막 이라도 되는듯 이전도 이후도 없을것 처럼 듣고있던  FM을 끈다.

어느소리도 감히 어울릴수 없는 여름날 빗줄기의 리듬

 

 

 

그대 만나기 전에는

 

언제나 나는 혼자였다.
비가 내리는 날 따뜻한 커피를 들고 창가에 서면 빗줄기 벽을 통과하여 내려와 
좁고 메마른 가슴 사이를 흘러 화려한 오렌지 칼라 엄지에 
칠한 내 긴발가락 아래 흥건히 고였다.
혼자였기에 참았다. 누군가의 빈 가슴에 라도 뛰어들고 싶었고 
베란다 가득한 책 무더기 에도 파묻히고 싶었다.
나를 좋아한다는 아무개의 프로포즈도 받고싶었다.
그때는 나를 녹이면 사랑한다는 그들의 이름이 청동석 조각으로 새겨질줄 알았다.

그대  만나기 전에는 내 낙타만큼 긴 눈썹 눈동자는 컬렉션 은화처럼 빛나고
플라멩코 블라우스와 펜슬 스커트면 은하와 영혼이 흐르는 별들의 흐름도
나를향해 바꿀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 지나가는길  꽃잎들도 내 발끝에  부끄러워 고개 떨구는 줄 알았다.
그대 만나기 전에는… 

또 다른 나

 

눈이 부시다. 마음마저부시다.
각을 세운 건물들 위로 겹쳐지는 아픈 얼굴들 어느날 꿈속이었는지
싸늘한 그대가슴 안았고 그 안에서 내비쳐진 빛깔은 파란하늘이 아니었다.
온 세상은 푸르름에 덮여 가고 머리위 하늘은 곱디 고운데 내몸은 이제 물기마른 잎새,
흔들리는 넝쿨 되어 허리는 벗기우고 피부는 납빛으로 말라갔다.
햇살이 스며드는 기억의 틈새마다 미처 붙잡지 못한 조각들이 잊어야할 서러운 사연으로남아 가슴 한구석 아릿한 채로 하늘가득 흩뿌렸다.
먼 하늘아래서 잠시 꿈을꾼듯 서글픈 그리움으로 하나 둘 새로운 창을 만들고
어느 순간부터 인가 친숙한 나의 일부가 되어버린

또 다른 나,
나 아닌 나

의지 (will)

 

중력전 자기력 강약력 약약력
이 세상의 모든 힘 이란다.
하나더 추가 ― 그건 의지
내가 그대에게 다가가고 그대와 입맞추고
그대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힘
황무지 계곡에 초승달이 뜨고 돌보지 않아도
백합꽃 피어나는 마술 엔트로피법칙에 반항하는
오직 하나의 힘
그건 너와 나의 의지

 

이 모든 건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다

 

갈색나방의 날개에 찍힌 선명한 태극문양을 어항속 열대어
플레임엔젤의 알록달록 줄무늬를 허밍버드의 날갯짓과 부리에 묻은 화초꿀을
무한반복의 프랙탈 물결무늬 스카프와 알람브라의 아라비아식 타일장식 들을
나는안다.
이 모든것이 그냥 생기지는 않았다.
2.4kg의 사랑이가 지금 40kg이 넘지 항상 6각형 대칭으로 만들어지는
눈의 결정체의 비밀과 음식 몇조각만 먹어도 잘 작동되는 내몸의 신비와
약간 기울어 졌다는 지구가 수억년 오늘도 잘 돌아가는것과
9번 교향곡의 4악장의 불협화음이 더없이 조화로운것을 나는안다.
이 모든건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다.

원근법 조차 무시하고 조각난 피카소 그림의 흡입력과
어느 시인의 소네트 한줄언어의 소름과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놀라운 앵무새 사진들과
두공간을 지나간 한마리 고양이의 양자역학적 운명과
남이섬에서 만나 점심식사를 같이한 다람쥐꼬리털의 숫자를
나는 안다.

이 모든건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다.
오늘까지…

감시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지니

 

난 파리센강변 생트샤펠 성당근처에 살지
하지만 그들은 그냥파리 11-109bF 지역이라 불러
11구역-109bF 에는 외눈박이 신도 함께 살고있지 언제나 우릴 보호해 주기위해
혹시 침대 다리라도 부러져 다칠까봐 내침실을 열심히 엿보고 있지
그 너머엔 어떤 괴물이 낄낄거리고 침 흘리며 햄버거를 먹고있을지 아무도 몰라
우리는 감히 신을 대면할수 없거든 왜냐하면 신은 자기 사생활이 있으니까
우리는 그들을 존중해 주어야 하니까 다행히 위대한 오웰의 예언은 빗나갔어
1984년은 오히려 낭만의 시절 이었지 빅브라더가 좀늦게 도착 했거든
하지만 이제 밤하늘에는 별보다 많은 인공위성이 빛나고 있어
커다란 렌즈를 껌벅이며 우주가 아닌 아이들이 뛰노는 잔디밭과
주황색 기와지붕들을 향하고 있지 내 신발끈에 내려앉은 무당벌레도 볼수 있는걸
이제 당신은 당신만의 비밀을 가지고 싶다면 절대 아무행동도 하면안돼
그냥 상상만 해야해 

쉿! 그리고 절대 잠들지 마

알고 보는 장면

 

봄바람이 창문밖에 수줍게 서 있어서
어서 열고 인사하고 싶지만
두꺼운 문풍지 가로막고 서있네.
끝장면을 알고보는 드라마는 좀 싱겁지만
매해 봄이오는 결말은 왜이리 흥분 되는지
올것이 – 온것인데.
베란다 때묻은 토분 하나하나 아기처럼 닦아주며
길어진 봄햇살 발가락 간질이는 

2월 28일 11시 한컷!

벚꽃

 


시를 쓰겠다는 생각은 일주일간 떨쳐 버리기로 하자.
이즈음 시즌에는 그냥 벚꽃같이 그냥 벚꽃같이 두마디면 충분하다.
이렇게 꿈결같이 봄날을 보내자.
꽃잎속에 꽃잎 또 꽃잎 무한수열의 그리움 속에 봄날은 간다.
나에게 남겨진 나날이 짧을수록 벚꽃은 눈부시게 보이는것.
누군가 이계절이 종말의 의식을 하기에 완벽한 일치라 하지 않았나 

우리도 어느해 봄날처럼 눈부시게 피었다가
한잎 한잎 떨어지자 너를 알고부터 알아버렸다.
그 어느것도 소중하다는것,
그 어느것도 사라진다는것.
그래도 이봄날 꽃잎 하나 땅에 떨어질 일각만큼 살아있다는것

충분하지 않은가!

연꽃

 

난 오늘아침 빅뱅을 보았네 .

하늘에 펼치면 열린 우주만큼 넓고 밤 호수에 띄우면
닫힌 진주처럼 신비로운 그대를만났네 .

천년에 한번피는 꽃 세상을 희게 세상을 고요하게
수면에 누워 하늘을 떠 받치는 푸른 부챗살 줄기
 달빛몰래 솟아올라 아침 태양을 가리는 싯다르타 꽃

건너편에 있는 당신 부르면 수면 위 스치며 사뿐히 걸어올 듯 한걸음에
한 잎 또 한 잎 그저 푸르게 아스라하게

당신은 저편에 나는 이편에

라일락

 

과수원 언덕 길가 살구나무집
담 벽에 기대어 걷던 그때의 밤처럼 가슴 설레게 유혹하는
보랏빛 화려한 꽃향기

오늘은 아파트 숲의 회색 경계를 타고 넘어 꿈꾸듯 아득히 스치는 은은한 푸른빛 향수

라일락이란 이름만으로 불가항력 마취제처럼
묘한 공기의 숨결 느껴지고 감당하기 어려운 나의 홍조 감추기 어려워 고개 돌리고

어스름저녁빛

당신의 입김에 에워싸여 당신도 느낄 만큼
들켜버린 내 심장 박동 소리 이 순간 온 세상을 독점하는 라일락 꽃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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