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데스2-1

묵호항

묵호항 ― 바람이 차다.
코트 속 스멀대는 소름
알 가진 도루묵의 행렬
유미의 한 사발 선물이란다.
뻘건 생선국에 대파 몇 조각
징그러워 숟가락 담그기 어려운데
안 그런 척 한 숟가락 떠 먹고
체한 듯 속 쓰림으로 항구 어전을 떠난다.

아! 옥계 휴게소다.
바다도 하늘도 옥빛이다.
한 모금 간절한 커피 생각으로
휴게소 안으로 들어가니
바다 풍경 한눈에 보인다.
아! 이 휴게소!
우리 나란히 서서 바다 바라기 하던 자리구나.

태백을 지나며

늘 보고 사는 것처럼
살았다고 해야 하나
오랜 시간 속의 리얼 스토리
붙잡고 왜 더 가까이 오지 않았냐고
하기 전에

그랬었어야 했구나 하며
그저 스쳐 생각할 뿐

강구항 단상

싸락눈 나리는 블루로드
은빛 어구 모래밭 끝에 수킬로이어진게카페를본다.
그 흔한 커피 카페 하나 없다.
등대에도 교각에도 게딱지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어시장뒷골목찜통마다만발한하얀수증기
오색 간판마다 질펀히 유혹하는 아제들의 입담
센과 치히로의 밤 파티에 초대된 듯하다.
정작바다에는게한마리없다.

하긴 갑각류 알레르기인 내가 이곳에 올 이유는 없지만
한 점 게 살 살포시 벗기어 당신의 가슴에 넣는다.
서울로 오던 길 카페에서 크림치즈 프레첼 하나 시킨다.
영락없는 웅크린 게 다리 모양에 꽉 찬 게 속살이다.

집 1803

전자음 여섯 개의 조합이 문을 열어준다.
텅 빈 집에 정지된 공기가 흔들린다.
누군가 있을 거라는
잠시의 환각은 맥주 포말처럼 사라진다.
무거운 이산화탄소가 방마다 가득 차 있다.
그대로 잠들었다. 그대로 일어난다.
내 브레인 속 기억 회로는 금세
어제의 사건과 사용된 언어들을 백업한다.
어둠 속 응고된 가구들이 목격자처럼 서 있고
내 눈엔 미확인 핸드폰 문자들이 새로이 입력된다.
아!
어디서부터 잘못된 코드가 삽입된 것일까
어떤 언어가 그리도 감정영역 템포랄 볼(temporal lobe)을
흔들었을까
인간의 감정처리 장치는 리셋이 이리도 어려운가? 
불러오기 입력창을 누르지 않아도
매 순간 새벽 ― 어제의 메모리는
나를 붙잡고 시작의 아침을 산산이 부수는 것이다. 
왜 그만하기 단추는 찾을 수 없을까
나는 다시 잠을 청하여
해묵고 낡은 시냅스를 도려내려 한다.
나는 기분 좋은 모닝 꿈을 입력해야만 한다.
아침이 되어
다시 부팅되면 당신은 내 곁에서 잠들어 있어야 한다. 
커튼 사이로 햇살은 스며들어야 한다.
알코올에서 깨어나 내 의식을 재조합한다.
어제의 후미진 구석구석 ― 먼지 낀 상처 토막을 
목을 감는 긴 스카프 감촉과
맨발에 전해오는 풀잎들로
신경회로는 더 명료히 재빠르게
혈액에서 카페인 코드를 추출한다.

자본주의

오래전 죽은 정치가 몇 명이 그려진 페이퍼 조각에
글 나부랭이로 태어난 모든 쟁이들이 잘려 나간다.
싸구려 사케 집 술 광고문이 샤이니 샤이니 빛난다.
잠시 취한 서비스의 대가는 텅 빈 주머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모든 행복은 돈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단순한 알고리즘 위에서
착착 줄 맞추어 군상들이 움직인다.
모든 재물은 은행의 지하 창고로
그곳에서 수백 년간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돈이 없어 망한다. 돈이 없어 죽는다.
그래도 지하 금고에는 돈이 계속 쌓여만 간다.
쌓여진 높이만큼 인간은 초라해진다.
캐피털리즘이라 했던가?
노트르담 성당 첨탑에 어울릴 듯 화려한 이름이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한 오늘도
삼성페이로 계산하고 수십 개의 보너스 카드를 찾아 헤맨다.
온갖 잔재주로 내 호주머니를 털어낸다.
내 통장에 잔고가 0이 되는 날
내 영혼의 무게도 제로가 된다.

에라! ― 이날 천지개벽이라도 일어났으면 좋겠다.

인조인간

너는 외계별에서 온 나를 원했지
제품번호 730217 넘버조차 없는
완전한 소유 ― 뉴 인조인간을
하지만 난 제조연월일도
생산 공장도 존재하는
엄연한 라이선스 제품이지

너는 존 레넌이 꿈꾼 세상
과거도 이데올로기도 색깔도 없는
그런 나는 원했지 힘든 일이었어.
내가 나를 잊는다는 것은
변명하지만―존 레넌도 음악을 버릴 순 없었을 걸

하지만 당신과의 뉴 라이프는 완벽해야 할 것 같아
왜 심장은 리셋이 일어나는데
내 브레인은 지난 파일들을 간직하고 있을까
오랜 습관은 회로가 충돌하고
스파크가 일어 타버리지
드라마의 그 흔한
기억상실증은 왜 나에게는 안 일어나는지

자본주의

어느 미인대회 아카데미 학원
광고 카피

사람 중심의 교육
수준별 맞춤 교육
본선 대회 책임제

긴 시간의 정지 포즈와
셀 수 없는 워킹 연습
하하 ―
이것이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라면
당신은 지상의 즐거움 50%는 포기하여야 할 거다.

언젠가 사진 작가분이
나를 유심히 보다
의심의 멘트를 던졌다.
미인대회에 나간 적 없냐고

철없던 대학 새내기 시절
나에겐 나름 큰 비밀이었다.
이젠 말을 할 수 있는

사회자의 왜 미스코리아가 되려 하냐는
상투적 물음에 무언가 길게 답하였다.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는 아니라고
아무래도 이 긴 대답이
그들에게는 인상적이었나 보다.

여신에게 기대하는
참을 수 있는 대답이었나 보다.

미 투

소녀가 손목을 긋는다.
여러 줄 손목 상처에 
한 줄 더 붉은 금이 간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는다고
존경하는 선생님이 약속했는데
멘토인 선배가 약속했는데
사랑의 신부님이 약속했는데
떡 안 준다고 잡아먹었다.
한 줄의 목걸이 끈을
미안하다며 목에 걸어준다.
한번 주었으니 또 달라고 한다.
오빠야가 지껄인다.
넌 원래 가슴이 큰아이라고
경찰 아저씨가 이야기한다.
원래 세상은 이런 곳이라고
하늘 같은 판사님 말씀하시네.
내 몸은 너 하기 나름이라고
모두 다 옳으신 말씀
미투

소녀가 또한 줄 손목을 긋는다.